오르고 매달리는 조각
박서영
작품 앞에서 부풀고 쪼그라드는 과정을 무한히 겪었다. 형언할 수 없는 것 앞에서 자꾸만 빗나가는 말에 한없이 위축되었다가도, 보잘것없는 비유나 몸짓을 유연히 받아들이는 그것에 한편으로는 기대했다. 그러던 중 그 속에서 희미하지만 변치 않는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그나마 그리고 과분하게도 고유한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괄호 쳐 두었던 존재의 문제는 이렇게 알쏭달쏭한 감각과 소박한 은유로부터 건드려진다.
인간의 본능, 원초적에너지, 생성-소멸과 같은 존재론적이고 근원적인 주제를 조각과 설치로 풀어온 안민환은 공간 So.one에서 ‘월간 전시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해당 프로젝트는 매월 그의 작업 과정과 작품의 궤적을 살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오픈스튜디오와 개인전 그 중간 어디에 머무른다. 이번 프로젝트는 제목을 걸고 관객을 맞는다. 이는 조각 안에서 구현하는 형(形)의 긴장, 조각과 조각 사이 관계의 긴장, 조각이 의미하는 ‘살아있음’의 긴장 모두를 아우르며, 그의 작품을 팽팽하게 연결된 의미망으로 진입시킨다.
전시 ⟪Ten-sion⟫은 ‘tension’을 유발하는 설치 작품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커다란 뭉텅이이기도, 개별적인 서사를 가진 세 갈래의 작품이기도 하다. 벽에 의지해 둥둥 떠 있는 발 없는 조각들은 울퉁불퉁 매끄럽지 못한 매무새를 지녔는데, 매달려 있는 것이 위태로워 보일 만큼 크기도 크다. 그러나 또 어떤 것은 작거나 가늘어 벽을 타고 오르는 모양새가 가뿐하다. 이들의 외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자연’을 닮아 있으면서도 그저 닮았을 뿐, 진정한 자연물은 아니다. 조각들은 그저 비정형의 변주를 선보이며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할 뿐이다. 안민환은 이러한 조각들 사이의 거리를 헤아리며 그들이 만분 관계하면서도 충돌하지는 않게끔 배치하는 조율사로 역할 한다. 이 조율사는 이따금 조련사가 되기도 한다. 조각에 고리를 달거나 라텍스를 타이트하게 거는 것으로 당기는 느낌을 가미하듯 말이다. 이렇게 조각들은 정적이면서도 긴장된 모습으로 벽에 ‘매달리기’를 독려 받는다.
이러한 작품의 형태와 설치 방식은 안민환의 취미인 클라이밍과 클라이밍 홀드(hold)에 근거한다. 그는 신작을 제작하며 작품에 등산, 클라이밍과 같은 자신의 취미를 반영하고자 했다. 존재에 대한 감각과 원초적인 물음을 공통감이나 사회적 사건과 결부시켰던 전작과 비교해 보았을 때, 소박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분명 새로운 시도다. 이러한 변화의 동기를 다음과 같이 유추한다. 그는 근래 등산과 클라이밍에서의 ‘오르고’ ‘매달리는’행위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오르고 매달리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선명히 느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결국 안민환은 일상의 경험이 평소 골몰하던 주제와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이로써 그의 조각은 ‘발 딛고 서 있던’ 것에서 나아가 ‘매달리고 당겨지는’ 새로운 이미지를 얻게 된다. 작품 자체가 그가 되어 ‘오르기’를 수행하는 투사체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연상하는 ‘자연’의 상태를 흉내 낸 외피, 유약해 보이지만 질기게 늘어진 라텍스, 생명을 잉태하듯 벗겨져 내리는 형세는 전작에서도 등장한 조형 어법이지만, 작품은 그의 내밀한 이야기로서 벽을 타고 오르는 힘을 부여받는다.
안민환의 작업 과정을 들여다본다. 작품의 뼈대가 되는 얇은 철망에 발포 우레탄을 쏘고는 손으로 꾹꾹 눌러 부피감을 줄인다. 포슬포슬한 흙에 점착 재료를 섞어 바스라지는 그것을 애써 표면에 얹는다. 이를 보며 떠오르는 수사들도 서로를 밀쳐내며 극단을 오간다. 그렇게 완성된 그의 조각을 바라보았는데, 힘겹게 벽을 타고 오르는 그 모습이 이해가 갔다. 거스르고 거스르는, 편히 보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거스름’의 연장선에는 작품의 구석, 엷게 붙은 이끼도 있다. 자연을 흉내 내지만 온통 인공적인 재료뿐인 그의 작품에서 유일한 자연물인 그것이 제일 부자연스러웠다. 그래서인지 그것의 존재감이 계속해서 거슬렸다. 그러다 문득 이끼의 그러한 (부)자연스러움이 그의 작품 앞에 선 나의 모습과 가장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읽어 내리기 위해 엎치락뒤치락 양극을 오가는 사이, 이질적이게 자각되는 나라는 존재. 안민환의 작품은 그렇게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나’를 어색하지만 분명하게 감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