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되지 않는 삶에 대한 생각은 사실 우리 모두가 하루에 한 번 쯤은 지니고 사는 생각들이다. 누구도 그 경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삶,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저 답이 없는 이야기를 주욱 늘어놓는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도 한다. 서로 애써 꺼내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사실이나 불완전한 결말 등을 다들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이 예술의 중요한 주제로 지속 하여 다뤄진다는 것은 그것을 떠올려보는 것 자체만으로, 그 주제를 한 번 곱씹어 보 는 것만으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죽음, 그 긴장되는 관계
안민환은 앞서 말한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작품의 저변에 가지고 작업을 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직간접적으로 누구에게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그것 은 그 단어가 어느 누군가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 모두 에 해당되는 전제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 전반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죽 음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의 무거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끈끈하게 붙어있는 삶과의 연결성을 뜻한다.
이번 5월에 있었던 전시는 《Ten-sion》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는데, ‘tension’이라 는 단어는 앞으로 소개할 안민환의 작업들을 응축해놓은 단어라는 기분이 든다. 몇 년간에 걸쳐 지속된 그의 작업들에서 꾸준하게 보이는 작품의 모습들은 죽음과 삶에 대한 압축과 팽창, 축소, 생략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 여러 가지 방향성과 재료를 가지고 작업하며 그야말로 이 주제에 대한 ‘긴장’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초기 모델링이라는 덩어리 작업에서 시작해 선적인 작업으로 이어지다가 해체적인 느낌으로 연결되는 과정이 그렇다.
영원하지 않은 존재에 대하여
초기의 작업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완성된 형상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남 겨 두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특히 <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 >(2015)이나 < 자화 상 >(2016) 시리즈 같은 경우, 그가 잘 사용하는 라텍스의 질감이 돋보이는데 전체적 으로 내구성이 약한 재료들을 선호하며 소멸 가능성을 제시한다. 안민환은 인간의 몸 에서 실시간으로 무수한 세포가 생성, 소멸되듯 인간의 완전한 형상의 질문과 유한한 신체를 의도하고자 이 재료들을 선택했다. 작품에 나타나는 단단하면서도 팽팽하지만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라텍스의 질감은 어느 누군가의 핏줄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하고 있는 고뇌를 그 장소에서 함께 하도록 하는 느낌을 받게 한다. 같이 고뇌를 하 는 것 같은 느낌은 보는 사람에게 그 장소에 작품과 함께 살아있다는 생동감이 있는 경험을 하게 하는데,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마 동시대를 살면서 느끼는 존재론적 가 치와 혼란이 비슷하기에 가능할 것이다
< 아시안 홀로코스트 메모리얼(Asian Holocaust Memorial) >(2018)은 안민환이 꾸준 히 관심을 가져온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예전부터 그가 가지고 있던 죽음에 대한 충격이 유럽 여행 중 보게 된 백골들을 통해 더욱 직관적으로 느껴졌던 것인데, 단단하지 않은 물성을 가진 휴지를 이용하여 죽음 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 작업은 물로 뭉친 휴지덩어리를 가지고 추모 비 모양으로 만들고, 유대인 추모비 사이에 배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유한하면서도 나약한 삶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진 백골의 이미지는 안민환에 의해 담담하게 표 현된 추모비 모양을 통해 더욱 더 깊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 아시안 홀로코 스트 메모리얼 >에 나타난 작업 방식은 앞서 보여주었던 < 자화상 >이나 < 나를 움직이 게 하는 무엇 I >에서 보여주었던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팽창하는 감각들에서 더 나아 가, 한 번 정돈된 이후의 모습 같은 절제되고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작업 방식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생성과 소멸, 자연적인 순환에 대한 이야기
< 무엇도 아니지만 무엇도 가능한 덩어리 >(2021), < 당신을 향한 결백 >(2022) 등에서 안민환은 이미 보여줬던 작업들보다 견고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더욱 정제된 감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속적으로 죽음과 소멸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해온 그는 평소 자신 의 취미인 클라이밍을 하면서 느낀 위험한 순간에 대한 아찔함 등과 작업을 할 때 생 각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가 연결된다고 생각하여 작품으로 이어나갔다. 이 작업 들에서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물의 생성과 순환을 덩어리진 모습이나 벗겨지고 연 결되는 느낌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업에 나타난 핏덩이 같은 느낌과 자연의 느낌이 공존하는 모습은 살아있는 육체와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함께 이야기 하고자 하는 효과라고 한다. < 무엇도 아니지만 무엇도 가능한 덩어리 > 작업들에서 안 민환은 ‘덩어리’라는 것을 또 한 번 소재로 끌고 온다. 그의 언급에 따르면 덩어리는 인체 소조 작업 중 특정 부위가 다듬어지기 전의 단계로 존재하는 ‘시작점의 의미’ 이다. 즉 아직 결과를 모르는 상태의 열린 결과물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덩어리를 뜻한다1). 자연물처럼 보이지만 인공재료들로 만들어진 이 덩어리들은 죽음과 삶이라 는 대전제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자신의 시작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나온 생 명력 있는 그 무엇을 뜻한다. 죽음과 태어남, 생성과 소멸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어떻 게 보면 형체가 단단하지 않고 어떤 것으로도 변할 수 있는 덩어리는 그 자체로 원시 적인 생명력을 가진 어떤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 당신을 향한 결백 > 같은 경우 하나의 커다란 원본을 만들고 그 원본을 오리고 잘라내며 끝없이 연결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처럼 현재 관심을 갖고 진행하는 작업들은 원형의 모습을 해체하여, 작품 을 만드는 과정에서 벗겨지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는 효과들을 많이 보여준다. 원 본을 오렸을 때 나오는 빈 공간들은 죽음 이후의 어떤 공간을 상징하는 것과도 연결 된다. 원본을 해체한 후, 해체된 이미지들을 다시 잘 접어 보면 원래 있었던 형상을 다시 금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작업방식을 통해 생성의 과정을 작업에 담아내고 있다. 평소 그는 태어났기에 존재하는 것인지, 죽음이 있기에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 을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안민환의 이런 고민자체가 작업 방식으로도 엮어진다는 생 각이 든다. 또한 이런 작업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끝없이 팽창되던 것에서 잠 시 숨을 고르며 감정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렇게 삶은 또 시작 된다
누군가 죽음은 삶을 인지하는 사람에게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안민환은 그 누구보다도 신중하게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어떻게 보면 누 구도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이 주제가 그의 작품 안에서 이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다 양한 매체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깊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다. 나약하면서도 유약하고 끝을 알면서 그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 존재들에게 다시 한 번 끝없이 삶이 시작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삶과 죽음의 이분법적인 생각 과 불안하게 증폭되며 팽창하는 인체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존재의 생 성과 소멸에 대한 커다란 순환에 대한 이야기로 확대되는 안민환의 작업 세계는 그러 므로 삶이 또 시작된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그의 이야기는 어디로 까지 확대될지 모르나 관객들로 하여금 이 지루 하면서도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일상 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 속에서, 지금 당신은 어디에 위치하는가?”